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지강헌 사건이 꼬꼬무 방송을 통해 재조명돼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2020년 6월 14일 오후 방송된 SBS 파일럿 프로그램 ‘스페셜-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지난 1988년 TV 생중계 인질극으로 화제가 됐던 ‘지강헌 사건’이 전파를 탔습니다.

지강헌 사건은 1988년 10월 8일부터 10월16일에 걸쳐 서울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됐던 25명 중 12명의 미결수들이 호송 도중 교도관들을 흉기로 위협하고 권총을 빼앗아 집단 탈주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와 지강헌은 누구인지 좀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지강헌 프로필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 이름 : 지강헌(池康憲)
* 출생 : 1954년 2월 8일
* 출생지 : 전라남도 광주시(現 광주광역시, 보성군이라는 말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음)
* 사망 : 1988년 10월 16일(향년 34세)
* 사망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 본관 : 충주 지씨 불우한 집안에서 5남매중 막내로 자람
* 신체 : 170cm / 68kg
* 범죄유형 : 절도, 상해, 탈옥, 인질극(전과 11범)

지강헌은 대한민국의 범죄자입니다. 1988년 10월 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충남 공주교도소로 이감되던 25명 중 11명과 함께 집단 탈주하고 서울 시내로 잠입하여 10월 15일부터 16일까지 서대문구 북가좌동에서 안광술, 강영일, 한의철 등 3명과 더불어 인질극을 벌이다 자살하였습니다.

2.지강헌 성장과정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가난한 집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거리로 나선 지강헌에게
배운 것이라고는 도둑질 밖에 없었다. 도둑질로 생계를 유지하다 경찰에 붙잡혀
처벌을 받고 나면 어떻게든 바르게 살아보려 했지만, 기술도, 자격도 없다보니
변변한 직업 한 번 가져본 적이 없고, 바른 길로 이끌어 줄 어른도 주위에 없었다.
그래도 어린 시절 부터 섬세한 면이 있다보니 막연하게 ‘시인’이 되고 싶었던 지강헌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를 포함해 시간이 있을 때마다 책을읽었고, 시상이 떠오를 때면
습작을 해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지강헌의 운명을 바꾼 것은 1980년에 제정된 ‘사회보호법’이었다.
상습 범죄자 등 ‘불순한’ 사회악으로부터 선량한 국민과 사회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이 법은 ‘유사한 죄로 2회 이상 실형을 받고 그 형기의 합계가 3년 이상인 자가 다시 유사한 죄를
저질렀을 경우’ 등 상습성이 인정될 때 장기간 보호 감호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당시는 서슬 퍼런 군사 독재 시절이었고, 지강헌 역시 삼청교육대와 사회보호법 등 범죄자와
불량배들을 겨냥한 철퇴에 대해서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이 그 대상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 했었다.

3.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건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188년 7월 18일 새마을운동본부 비리사건으로 구속되는 전두환 동생 전경환

– 100억원대 횡령한 대통령 동생은 7년 (실제로 2년만에 풀려남) –

그런데 1988년, 온 나라가 올림픽 개최의 감격과 흥분에 휩싸여 있던 그 때, 남의 집에 들어가
556만원을 절취한 뒤 도주하다 붙잡힌 지강헌에게 내려진 형량은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
도합 17년이었다. 지강헌은 눈 앞이 캄캄하고 앞 길이 막막했습니다.
당시에는 지강헌 처럼 ‘사회보호법의 날벼락’을 맞는 재범자가 많았습니다.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지강헌 등 사회보호법의 적용을 받은 범죄자들의 절망감을더욱 증폭시킨 것은 같은 시기,
1988년에 터진 ‘전두환 前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부패사건’이었습니다.
형이 대통령이던 시절,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전경환의 뇌물 수수와 각종 인사 개입, 횡령 등 범죄 행각에 대한 풍문과 폭로,
비판이 거세게 일던 끝에 전두환의 후임 노태우 대통령이 집권한 뒤 새 정권의 부담을 덜기 위해
그를 사법 처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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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환은 공식적으로 그가 총재로 있던 새마을운동협회의 공금 73억 6천만원을 횡령하고,
새마을신문사의 수익금에 대한 10억원의 탈세, 그리고 4억 1700만원을 수수하고 저지른 불법 이권
개입 등 일곱 가지 죄목으로 기소되었습니다.

항간에는 전경환의 횡령 액수가 600억원에 육박한다는 이야기가 떠돌았습니다.
그런데 천문학적인액수의 횡령과 탈세, 뇌물 수수 등의중대 범죄를 저지른 전경환에게 내려진 형량은
징역 7년에 벌금 22억원과 추징금 9억원이 전부였습니다.

이마저도 곧 감형과 사면이 이루어지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전경환은 수감된 지
3년 만인 1991년6월 가석방되었고, 이듬해 1월 대통령특사로 사면복권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철권 독재 통치로 국민의 숨통을 조이던 전두환 군사 정권이권력을 이용해 자신과
측근, 가족들의 탐욕을 채우느라 국고를 축냈다는 세간의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는 신호탄이었다.
또한,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권력이나 돈이 있으면 쉽게 풀려난다는 속설이 입증되면서
당시 국민적인 분노를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결국 1988년 10월 8일, 영등포교도소(現 서울남부교도소)에서 대전과 공주 교도소, 공주치료감호소로
이송되던 25명 중 12명이 교도관을 흉기로 찌르고 탈주하여 서울시내로 잠입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달리, 이들은 본래 흉악범이 아니라 잡범이었는데 사회보호법에 의한
보호감호제도 때문에 징역형을 마치고도 보호감호처분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560만원
절도를 저지른 자신은 무려 17년을 살아야되는데 항간에 알려진 600억 원을 횡령한 전경환이
겨우 7년(2년만에 풀려남)인 사실에 불만을 가지고 탈출을 감행한 것입니다.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지강헌이 든 M1911 권총의 슬라이드가 분리되어 앞으로 튀어나온 상태이다. 사실 저 상태에선 발사가 되지 않습니다.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이 중에서 최후까지 잡히지 않던 5명 중 4명은 경찰의 검문을 피해 서울시에서 은신처 여러 군데를 전전하다
10월 15일 밤 9시 40분경 서대문구 북가좌동 고모 씨의 집에 잠입해서 고 씨의 가족을 인질로 잡았습니다.
이 인질극은 당시 TV로 생중계되었으며, 인질극을 벌인 범인 4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 지강헌 (당시 34세, 1954년 생)
– 안광술(당시 22세, 1966년 생)
– 강영일(당시 21세, 1967년 생, 생존)
– 한의철 (당시 20세, 1968년 생)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인질로 잡혀있던 고 씨가 새벽 4시 쯤에 탈출하여 인근 파출소에 신고했고, 곧 바로 경찰 병력
1천 여명이 집을 포위했다. 인질범들은 새벽 4시 40분부터 경찰과 대치하여 실랑이를 벌이다가,
낮 12시경 강영일이 협상을 위해 밖으로 나와있을 때 한의철과 안광술이 지강헌이 가지고 있던
호송교도관 김OO 교사(당시 54세), 김OO 교사(당시 36세)의 총을 빼앗아 자살했고
지강헌은 경찰에게 ‘비지스 – 홀리데이’ 카세트 테이프를 요구한 뒤 노래를 들으며 창문을 깨
유리조각으로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당시 1988년 MBC에서 생중계 한 지강헌 인질극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자살시도 직후 경찰특공대원들이 집으로 진입해 인질로 잡혀있던 가족은 모두 무사히 구출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강헌은 깨진 유리로 자신의 목을 찔렀는데 이를 지켜본 인질이 비명을 지르자 경찰특공대가 인질이 위험한 걸로 판단하여
즉각 진입하여 무방비 상태의 지강헌에게 다리와 옆구리에 총을 발사하였으며
몇 시간 뒤 병원에서 과다출혈로 숨졌습니다.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비지스의 홀리데이(1967)



당시 ‘홀리데이’를 요구한 지강헌의 요구에 경찰이 실수로 ‘스콜피온스’의 홀리데이를
전달했다가 급하게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다시 전달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우선 사건 당시 현장에서 지강헌이 들었던 노래는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맞습니다.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울려 퍼질 때 지강헌이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당시의 방송 녹화테이프에
기록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2006년 SBS 영화프로그램 ‘TV박스오피스’의 ‘영화비하인드’ 코너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당시 검거되지 않았던 5명 중 인질극에 가담하지 않은 마지막 탈주범 김길호가 탈주한 지
1년 9개월 만인 1990년 7월 1일에 체포되면서 탈주극은 완전히 막을 내렸습니다.
당시 김길호는 절대 한 장소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주도면밀하게 행동한 탓에
“김길호가 나타났다.”는 제보를 받고 잠복하고 있으면 영판 다른 장소에서 또 김길호를
목격했다는 제보가 들어와 경찰 관계자들 사이에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홍길동 같다.”며 ‘김길동’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1989년 개정 이전의 사회보호법에서 보호감호 기간을 최대 10년으로 규정한 탓에
이들에겐 10~20년에 이르는 매우 과중한 형량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전두환의 동생인 전경환은
무려 수십억 원대 사기와 횡령으로 1989년 징역 7년을 선고 받고 그 마저도 2년 정도 실형을
살다가 대통령 특사로 풀려났습니다. 그래서 지강헌 등은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는 특혜를 받고,
돈 없고 권력이 없으면 중형을 받는 대한민국의 불평등한 현실에 분노하여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쳤던 것이 명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강헌 일당이 무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4.지강헌 사건의 여파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이 사건을 기점으로 사회보호법의 단점이 폭로되기 시작했는데, 이 사건 이후인 1989년에
사회보호법이 개정되며 보호감호 기간이 7년을 넘지 못하게 고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로도 시민단체와 보호감호 피해자에 의해 ‘이중처벌’이라는 지적을 받으며
2005년 사회보호법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당시 체포되었던 전경환과 비교되어 대한민국 경찰이
‘시국 치안에는 강하지만 민생 치안에는 무능한 경찰’ 이라는 인식이 퍼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정직 공무원들에게는 비극이자 희극이 되었는데, 바로 수감자들에 대한 몸수색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주 원인이 과도한 근무시간으로 인한 교도관들의 피로라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당시 보안과 교도관들은 2교대로 24시간 근무 후 퇴근해 쉬고
다시 24시간 근무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이 일상이었는데, 이걸 계기로 24시간 근무 후 다음날에 휴식 후 다음날은 주간만 근무하거나 하는 식으로 조금이나마 근무 시간이 여유로워 졌다고 합니다.

5.지강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홀리데이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이사건은 영화로 까지 나오기로 하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가 바로 이성재, 최민수 주연의 영화 ‘홀리데이(2006)’ 입니다. 작 중에서는 지강’헌’이 아닌 지강’혁’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실화극장 죄와 벌’이라는 mbc 프로그램에서 지강헌 사건을 다룬 적이 있으며,
가해자를 다룬 것이 아니라 인질극 피해자가 국가에 대한 손해 배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그리고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3화의 메인 타이틀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인데,
지강헌 탈주사건이 드라마 속 뉴스에 나옵니다.


그가 인질극을 벌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는 인질에게 해를 가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인질극을 벌여서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줬으면 하는 바램 때문입니다.

6.지강헌 사건 이후 현재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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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현재의 대한민국도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칙이 알게 모르게 따라나옵니다.
당시 560 만원이 작은 돈은 아니지만 누구는 17년이고 조두순은 12년입니다.
그렇다고 조두순이 돈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12년 또한 옳은 형벌은 아닙니다.
지강헌의 행동이 옳은 ‘행동’은 아니지만 그는 옳은 ‘말’을 했다습니다.
대한민국의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칙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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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지금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강헌이 보았다면 과연 세상이 바뀌었다고 할수 있을까 싶습니다.
특히나 이번 이재용 주가 조정 사건을 보더라도 당연히 구속이 맞는것이지만 그는 불구속되었고
코로나 19에 신천지에 다녀왔다고 한 사람은 어제 징역 2년이 구형되었습니다.
아무도 법의 잣대는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현재에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사건 총정리(+현장사진 명언 홀리데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강현의 말이 아직도 맞다고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