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양 사건

1987년에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북2리 산 210에 위치한 오대양 공장에서 일어난 집단 자살 사건.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 총정리 (+ 충격적인 교주 박순자 정체 사진)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


사건의 발단은 박순자가 오대양이라는 사이비 종교 단체와 기업을 만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박순자는 1974년 횡격막에 병이 생겨 고통받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병이 회복되는 일을 겪었다고 주장해요. 사이비 종교 특성상 거짓말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죠. 어쨌든 박순자는 신 덕분에 병이 나았다고 믿었는지 신학교를 다니다가 여호와의 증인에 입교했고, 기독교 복음침례회 소위 구원파에 출석하기도 했습니다.

박순자는 구원파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이탈하여 1984년 5월, 대전에서 시한부 종말론을 따르는 사이비 종교 겸 회사인 오대양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참고로 오대양이라는 교명은 박순자가 “나는 오대양을 지배할 사람으로 앞으로 전 세계를 주관하게 될 것이다.”라고 공언한 데서 나왔다고 해요.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 총정리 (+ 충격적인 교주 박순자 정체 사진)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의 박순자, 이기정씨 등의 모습

먼저 1984년에 민속공예품 제조사 오대양을 만든 뒤, 그는 수입품 판매장을 만들면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민속 공예품 제조로 대통령상은 물론 88 올림픽 공식 협력 업체로 지정이 되면서 회사의 명성은 커져갔고, 이후 대전과 용인 등의 공장을 사들이며 사업을 확장했어요.

또한 제조 사업뿐만 아니라 유치원과 양로원, 고아원 건물을 사들이거나 임대해 사회사업을 했습니다. 시설을 당시로선 최신식으로 꾸며 고아들을 잘 키우는 모습을 보였기에, 대전에선 오대양의 평판이 아주 좋았고 박순자는 성공한 여성 사업가이자 여성들의 워너비로 평판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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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 용인공장에 대해 현장재검증을 하는 검찰


그러나 실제는 신도들의 자녀를 고아로 위장한 것. 부모는 없고 너희는 고아이며, 박순자만이 진짜 어머니라고 아이들을 세뇌했죠. 심지어 이들에게 부모를 찾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소리도 공공연히 했다고 해요.

더불어 신도 및 그 자녀들을 집단으로 공동생활하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신도들을 사람답지 않게 통제했습니다. 그리고 매월 한 번씩 반성의 시간을 가졌는데 신도들은 한 달 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실토하고, 규율을 어겼음이 드러나면 벌이라는 명목으로 가차 없이 집단 구타를 당했어요.




박순자의 사업 실패와 사채


그러나 1986년 4월. 일본의 모 전자 부품 생산업체와 합작해 당시로선 엄청난 거액인 7억 원을 투자해서 전자제품을 만들려고 했지만 사기를 당했고, 사업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 손실을 메우기 위해 박순자는 신도들에게 사채를 많이 끌어오라고 명했으며 신도들은 자신의 일가친척들에게도 돈을 빌려서 박순자에게 바쳤어요. 박순자가 신도들을 굴려 끌어모은 사채는 무려 170억 원에 달했는데, 갚지는 않고 사채만 끌어 쓰니 당연히 채무자들에게 독촉과 이자가 쌓여갔죠.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 총정리 (+ 충격적인 교주 박순자 정체 사진)
오대양 용인 식당건물 앞의 범죄감식 차량의 모습


그러다 1987년 8월 16일, 박순자에게 7억 원을 빌려준 이상배라는 사람이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기 위해 부인과 함께 오대양 공장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신도들에게 집단 구타당하다 못해 채무 포기각서까지 강요받자, 분을 참지 못하고 경찰에 오대양을 고소해요.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이들의 만행에 더 이상 참다못한 다른 채권자들도 박순자와 오대양을 고소했으며 경찰은 사기 혐의로 박순자를 조사했고, 사회에서 주목받게 되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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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엄청난 사채 이자를 더는 감당 못할 지경이고, 경찰과 언론의 압박까지 계속되자, 박순자는 전 신도들과 자신의 가족을 포함한 80명과 함께 오대양 용인 공장으로 모이라며 지시를 내립니다.



그리고 그중 자신과 자녀들, 가장 투자자금을 많이 끌어올린 32명 만을 골라 식당 천장에 올리고 나머지는 공장 창고 내 구석 공간에서 4일간 숨게 돼요.


집단 자살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 총정리 (+ 충격적인 교주 박순자 정체 사진)


1987년 8월 29일, 오대양 직원 김 모씨는 용인의 공장에 왔다가 내려앉은 숙소의 천장을 보고 이상히 여겨 식당 쪽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식당 천장에서 죽어있는 박순자를 포함한 32명을 발견하죠. 

마침 가족을 찾으러 공장에 온 박순자의 남편이 오후 4시 무렵에 경찰에 신고했고, 그렇게 오대양 집단 변사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 총정리 (+ 충격적인 교주 박순자 정체 사진)
부검을 끝낸 사체들이 입관 돼 복도에 나열되어 있는 모습


사건 현장을 발견한 사람들과 담당 형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천장 위의 상황은 정말 참 흑하다 못해 기괴한 모습이었어요. 천장 위에 있던 빈 공간에는 속옷 또는 잠옷 차림을 하고 있던 시신들이 이불을 쌓아놓은 것처럼 각각 19명, 12명씩 쌓여있었고, 먼 곳에는 공장장이 속옷 차림으로 서까래에 목을 맨체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사건 현장 정리 도중 사망자들이 썼다고 보이는 메모들이 발견되었는데,

“사장이 독약과 물을 가지러 갔다.”

“xx도 지금 매우 고통을 받고 있다.”

“xx가 꿈을 꿨는데 그곳이 지옥이라고 하더라.”

“남자는 다 잡혀가고 여자들은 다 헤어지고…”

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으며 사망 추정 시각은 발견 당일인 8월 29일로 판명되었습니다.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 총정리 (+ 충격적인 교주 박순자 정체 사진)

메모 내용과 상식을 뛰어넘은 상황 때문에 처음에는 집단으로 음독하고 죽은 것이 아닌가 추측했지만, 부검 결과 독극물은 나오지 않았고 대신 하이드라민이라는 신경안정제 성분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시신들 모두 경부 압박으로 인한 교살이 사망 원인이었고, 결정적으로 이들 모두 저항 흔적이 아예 없었다는 것이 판명 났어요.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 총정리 (+ 충격적인 교주 박순자 정체 사진)
피살자를 살해하는 장면을 재연하는 오대양 사건 관련 자수자와 자진출두자

결국 경찰은 가장 먼저 박순자가 공장장 이경수에게 자신을 교살시키고, 뒤이어 이경수를 비롯한 남자들이 여자들을 교살시킨 뒤, 박순자의 두 아들들이 철골 서까래에 줄을 매고 자살.

마지막으로 이경수가 목을 메어 자살했다고 판단했으며, 사망자들이 스스로 멀미약과 신경안정제를 복용하여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 즉 자의적으로 한 타살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 총정리 (+ 충격적인 교주 박순자 정체 사진)
검찰로 송치되는 오대양 변사사건의 자수자

사망자들의 사망 정황은 드러났다지만 어째서 사람들이 집단으로 자살했는지 명확히 드러난 바가 없었던지라, 경찰 당국은 오대양 직원 11명을 공개 수배했는데요.

결국 1991년 7월, 수배 중이던 오대양 직원 중 6명이 자수하면서 대전 지방 검찰청에서 재조사되었고, 검찰 수사 결과 1987년과 동일하게 32명의 집단 자살 사건으로 결론 나게 됩니다.


오대양 사건, 의혹과 밝혀진 내용


당시 세간에는 죽은 사람들이 자의가 아닌 타의로 자살을 강요받았고, 심지어 타인의 손으로 살해당했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손석희 앵커는 임의로 집단 타살이라며 방송했어요.

또한, 국회의원 박찬종이 1991년 7월 19일 기자회견을 이용해 구원파와 그 신도가 경영하던 모 회사가 사건의 배후라는 의혹을 제기하여 일파만파 번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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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종의원의 주장에 대해 해명 요구 시위를 하는 기독교복음 침례회 소속 신도들

구원파가 사건에 개입되었을 것이라고 의심한 사람들은 박순자가 실제로는 구원파를 이탈하지 않았고, 모종의 이유 때문에 이탈한 척하며 오대양을 차렸다고 주장했죠.

박순자는 구원파의 대전 지역 자금조달 책임자였고, 오대양은 외부의 돈을 끌어 모으려는 구원파의 위장 계열사였다는 것. 구원파 신도가 경영하던 모 회사의 자금을 마련하고자 박순자가 오대양을 차리고 신도들에게 거액의 사채를 끌어오게 했다는 주장인데요.

오대양이 세간에서 주목받고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구원파나 모 회사가 박순자 외 다른 31명을 살해했다는 것이 세간에 떠던 타살 의혹의 골자였습니다. 당시 언론에 제기되었던 내용인데, 실제로 오대양과 구원파 계열 사업체 간 자금 거래가 있었다는 내역이 일부 확인되기도 했어요.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 총정리 (+ 충격적인 교주 박순자 정체 사진)
오대양 사건 관련해서 구속된 ㈜세모사장 유병언씨


하지만 박순자가 오대양 설립 이전에 물품 대금을 구원파 교인에게 사업관계로 송금한 것은 사실 정상적인 거래일뿐, 오대양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거액의 오대양 사채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갔냐는 관심에 대해 수사 결과, 어디론가 유입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오대양이 고율의 사채 이자를 갚는 데 쓰인 것으로 추정되었어요.

위 의혹은 송금 관련 오해와 오대양에서 구원파 관련 회사에 한 차례 정도 인형을 구매한 적이 있는 점, 박순자가 한 때 구원파에 잠시 출석한 점이 있었던 점 등이 지나치게 확대 해석된 것으로 보입니다.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 총정리 (+ 충격적인 교주 박순자 정체 사진)



실제로 오대양 사건은 1987년과 1988년, 그리고 1991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세 차례나 재조사받은 결과 외부 세력과 관련이 없는 집단 자살로 동일하게 결론이 났고, 구원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건으로 종결되었어요.

당시 언론들에 의해 유병언 전 세모 회장 역시 오대양 사건의 배후로 그려지고, 그로 인해 구속 및 형을 살았다는 보도들이 많은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 수사 결과 그는 오대양 사건 관련해 전부 무혐의였어요. 유벙언 전 회장은 과거 이미 불기소된 상습사기죄로 4년 형을 선고받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대양 사건의 배후처럼 지목되어 오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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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습사기죄는 돈을 빌려주고 못 받았다는 내용으로, 이에 대해서도 유병언 전 회장은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으며 살아있는 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당시 유병언 전 회장과 오대양 간의 혐의점을 찾지 못하자 뭐라도 체포할 혐의가 필요해, 경찰이 과거의 불기소된 사건을 억지로 들춰내어 혐의를 씌우고 형을 살게 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기도 해요.

이 사건을 두고 월간조선,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시사정경 등의 언론에서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은 언론의 지나친 보도 경쟁과 일부 정치인의 정치적 이용 등이 어우러진 사례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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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구원파는 2014년 당시 금수원을 진입하려던 검찰에게 오대양 문제와의 연관 없음을 정확히 밝히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를 보면 과거의 이 누명이 그때까지 그들에게 꽤나 억울했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어요.

이로 인해 인천지방검찰청은 실제 공문을 통해 오대양 사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과거 검찰에서 철저하게 수사했으며, 해당 사건이 구원파와 관계없다고 다시 한번 밝혀주기도 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죽은 사람들이 모처에서 살해당하고서 공장 식당의 천장으로 옮겨졌다고 주장했지만, 사건 현장을 감식했던 경관은 현장의 상황상 다른 곳에서 살해되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일축했어요.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 총정리 (+ 충격적인 교주 박순자 정체 사진)

여성 사망자들을 부검하자 정액 양성 반응이 나왔기에 죽기 전 강간당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부검의는 국과수의 정액 양성 반응은 오류라고 반박했습니다.

검찰도 1987년 경찰이 결론을 내린 대로 32명 중 박순자를 포함한 29명은 목이 졸려 살해당했으며, 박순자의 두 아들과 공장장 이경수는 목을 매 죽었다고 판단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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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사건을 수사한 검사였던 박영수 변호사는 2014년 인터뷰에서 현장을 봤다면 타살 의혹을 제기하지 못할 것이라며 타살설을 강하게 부정했고,

“국회에서 5공 비리 청문회 때 재조사가 있었죠. 저도 법무부에 6개월간 비공식적으로 파견돼서 그 조사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국회 조사에서도 오대양 사건에 유병언 씨가 연루됐다거나 5공 인사들이 개입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의혹의 출발점이 되는 타살에 대한 새로운 증거도 없었고요. 1991년 조사는 그 해 7월 오대양 관계자 6명이 경찰에 자수하면서 시작된 것인데 그 조사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1991년 당시 유병언 씨를 검찰이 구속했지만 유 씨의 구속은 오대양 사건과 관련해서가 아니라 상습사기 혐의였습니다.”

라고 인터뷰한 내용도 있습니다.

오대양 사건 당시 현장에 있던 최후의 목격자 할머니가 실종되었다는 보도들이 있었고, 이로 인해 굉장히 많은 추측들이 있었지만 할머니는 딸이 모시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 해프닝도 있었죠.


오대양 사건, 그 후


당시 이 사건은 6.10 민주 항쟁 이후 민주화운동이 진행되던 와중에 터져서 사회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박순자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은 무려 270여 명에 달했고, 5공 특위에 오대양 사건도 조사해달라고 요구해 국회에서 청문회까지 열렸지만, 딱히 새로운 것이 밝혀지지는 않았어요.

이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면서 오대양 사건이 재조명되었습니다. 금수원 농성 중 구원파에서는 세월호 사건과 오대양 사건을 비교하면서, 91년 당시 오대양과 구원파를 연결 짓는 자극적 언론플레이로 인해 정부가 감추고 싶어 하던 몇 가지 사건이 무마되었어요.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 총정리 (+ 충격적인 교주 박순자 정체 사진)

당시 유병언 전 회장은 무관했기에 당당히 출두했지만, 그 길로 바로 구속되어 오대양과 관련 없는 사건과 거짓 증언으로 4년형을 살았다는 내용을 성명서에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스포츠서울닷컴 보도에 의하면 구 오대양 용인공장 건물은 다른 사람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고 해요. 당시 취재 결과 신도 시신들이 발견된 식당 건물은 이미 철거된 후였습니다.

세화정밀 측이 생산설비를 이전한 후 생산활동 자체는 없었고, 토지와 건물만 남은 채 매물만 나왔지만 값이 비싸 어느 누구도 사지 않았죠. 특히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오대양 사건이 재조명될 때 건물 근처에는 경비원이 상주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오대양 변사사건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드렸습니다.